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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춤(1)

기사승인 2020.09.15  11:2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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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창(李建昌1852-1898)의 고령탄

<고령탄>은 이건창이 동사(東史, 이종휘)를 읽다가 樂府 한 편을 청하는 동생에게 지어준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생각을 담은 노래 한편을 선물한 것이다.

제목은 고령부원군 신숙주가 탄식한다는 의미로, 작가가 역사적 변절자인 고령부원군 신숙주가 죽음에 임박하여 59년 삶을 회한하는 입장에 서서 서술한 장편의 고시이다.

필자는 20대 후반에 이 시를 읽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시의 함축성과 묘사의 적확성도 훌륭했지만, 우리 문사에 없는 보편성에 기초하여 신숙주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었다. 그 승리의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승리만으로 모든 것이 미화되고 합리화된 역사였다.

칼이란 누가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한데 우리 역사는 이를 다루지 않는다. 소 잡는 칼이든 요리하는 칼이든 칼을 쥔 자 마음대로였으며 그 칼의 용도에 따른 정당성 여부에 대한 평가는 없던 역사였다.

이 작품 하나만으로도 이건창은 최고의 문장가이며 시인이라 칭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다. 시란 무엇인가. 시인의 양심에 부딪힌 사건을 하나의 거짓 없이 토설해내는 것이다. 문이란 무엇인가. 도를 꿰는 도구이다.

시에 양심의 메아리가 없고 문장에 도의 조율이 없다면 하나의 서정적 문사에 불과할 것이니 어디에 쓰일까?

이 한 편의 시에는 양심이 있고 도의 조율이 있으며 인간과 비인간이 있으니, 인물의 현부를 양심과 도리의 관점에서 노래한 것이다.

인간의 양심은 모든 인간이 본디 소유한 칼이다. 그 칼은 불의에 숨죽이기도 하지만 울며 일어서기도 한다. 이건창의 고령탄은 숨죽여 울던 칼이 비로소 일어나 춤을 추라고 한다.

어찌 이에 그치랴. 칼을 쥐고 본분을 다하지 못한 김종서, 황보인, 정분의 무능도 탓하리라. 패륜의 세조와 신숙주의 칼날 아래 떨치지 못한 칼의 노래도 다시 깨워 일어서게 하리라.

칼을 쥔 자는 춤을 추어라. 칼춤을 추어라. 필부필부와 함께 추어라. 다시는 칼바람 앞에 숨죽이며 우는 장삼이사가 없게 하라고 한다.

고주환 논설위원 kjmong1479@hanmail.net

<저작권자 © CAM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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