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고종명(考終命)

기사승인 2020.10.27  18:27:43

공유
default_news_ad1

군자의 죽음에 종(終)이라 쓴다.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다하고 생을 마쳤다(終)고 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하여 고종명(考終命)을 인간의 오복(壽ㆍ富ㆍ康寧ㆍ攸好德ㆍ考終命)) 중 하나로 여겼다.

현대사 재계의 우뚝한 업적을 이룩한 삼성 이건희 회장의 죽음에 별세(別世: 통상 웃어른이 돌아가심을 이르는 말)라는 용어를 쓰며 언론에서는 대부분 명암(明暗)이 교차한다고 대서특필하고 있다.

우리 시대 진정한 어른은 없는가? 어째서 우리 사회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우리는 다음 세대에 무엇을 남기고 전달해야 할까?

고인의 공적은 지구촌이 다 아는 것이니 새삼 여기서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그분의 어두운 면은 무엇인가? 무노조, 정관계 로비, 불법 등이 대다수 평론가가 거론하는 항목이다.

고인이 “정치는 하류, 관리는 삼류, 기업은 이류”라는 발언을 하여 심한 고초를 겪었다고 한다. 필자가 했다면 국민은 일류라는 말을 첨가했을 것이다.

이 말이 진리 아닌가. 어째서 진리를 말한 사람이 심한 고초를 겪어야 했을까. 이러한 풍토가 바로 우리의 현대사였다. 이러한 풍토 아래에서 기업인에게 우리는 무엇을 바라는가? 심지어 대통령조차도 정권만 바뀌면 법의 판결을 받아 교도소에 가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 아니었는가. 항간에 떠돈 말로는 삼성의 돈을 받지 않은 정관계 지도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도덕 군자나 성직자가 아니면 권력지향적 풍토와 관리 통제적 사회에서 기업인이 살아남기 위하여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만 하였던 우리의 시대적 풍토를 반성해야 할 것이다.

서양의 속담에도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힘들다.’는 말이 있다. 이는 부를 축적하는 과정에서 도덕과 법을 준수하기 어렵다는 말과도 통한다. 우리와는 다른 사회풍토에서도 그럴진대 무소불위의 권력과 좀비 같은 관료제의 풍토에서 기업인에게 도덕군자의 절대적 평가척도를 들이댄다면 과연 누가 살아남을까.

그럼에도 서양의 많은 부자들은 그들의 부를 공공의 선을 위하여 기부하고 있다. 여기서 부의 진정한 가치가 살아나니 진정한 부는 인구에 회자하며 존경을 받는 것이다.

우리 역사에도 축적한 부를 이웃의 공동체와 함께하였던 풍토가 있었다. 관혼상제도 그러한 역할을 하였던 아름다운 풍속이었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는 속담을 통해서 우리 선현이 서양의 노블리스오블리제보다 훨씬 더 인간적인 실천을 했음을 알 수 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인간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인간의 삶에 세 가지 불후의 명성이 있으니, 교육ㆍ학문과 도덕과 업적이다. 고인은 업적을 남겼다.

고인은 산업화와 정보화 시대에 지구촌을 통틀어 한 획을 긋는 업적을 남겼지만, 마무리(終)를 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고종명이라 할 수 없다. 아쉽지만 고인의 후손이 그 뜻을 이어 고인의 업적에 버금가는 마무리를 기대한다. 그것이 바로 부를 영원히 지키는 비결이다.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 부를 유지한 분은 공자이다. 공자는 치부를 한 분은 아니다. 사마천이 역대 제후의 세가를 지을 적에 공자세가를 넣었으니, 이는 공자가 학문과 도덕으로는 왕이라는 의미이다. 이후 진시황이나 초기 공산주의 시대를 빼고 변함없이 존경과 부와 명성을 보존하였으니, 후대가 마땅히 힘써 본받을 표본이 아닌가.

 

고주환 논설위원 kjmong1479@hanmail.net

<저작권자 © CAM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