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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취(去就)의 표준을 논하다.

기사승인 2021.03.19  17:4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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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이와 류하혜를 중심으로-

공직에 나가느냐 물러나느냐의 표준은 어디에 있을까. 대저 공직(公職)이라 함은 선출직ㆍ임명직ㆍ고위공직자를 모두 포함한다. 고위공직자는 현 공직체계 상 국장급 이상을 말한다. 물론 여기에는 지방직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또 시군구의 자치단체장도 역시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의 권한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독자는 이점을 감안하여 혜량하길 바란다.

무릇 공(公)이라 함은 진리와 같은 말이다. 나도 옳으며 너도 옳고 지구촌 어디에 가도 옳은 것을 공(公)이라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물은 아래로 흐른다.’ ‘수학의 공식이나 물리학의 법칙’ ‘정치는 국민의 삶을 실현하는 것이다.’ 등은 언제 어디서나 어떠한 이데올로기에도 상관없이 옳은 것이니 이를 공(公)이라 한다.

공권력(公權力)이라 함은 국민이 헌법의 준수를 위임한 것이니 이를 준수하여 실행하지 못하면 곧 폭력(暴力)이다. 이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법과 제도를 교묘하게 운용하여 국민의 삶을 도탄에 빠지게 하는 정치는 폭력정치이며 폭력정치를 옹호하는 자는 그 폭력을 통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들이니 이런 자들을 모리배(謀利輩)라 하니 시정잡배만도 못한 양아치 집단이다. 그 대표적인 집단이 오늘날 정당(政黨)이다.

대저 정당(政黨)이라 함은 정치이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정권의 획득을 추구하는 무리이니, 그 근본은 정치이상의 실현이다. 정치의 이상이 무엇인가. 공(公)의 실행이다. 공(公)이란 무엇인가. 진리이다. 진리란 무엇인가. 정치의 진리는 인간다운 삶의 실현이니 여민동락(與民同樂)은 어느 시대 어떠한 정치체제 어떠한 이데올로기와 상관없이 정치 권력이 구현해야 할 진리인 것이다.

우리 역사는 보수정당이라 불리는 자들도 정권을 잡아봤고, 진보정당이라 불리는 자들도 정권을 잡아봤다. 그러나 그 정당이 그 정당이다. 국민의 삶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아니 그들이 서로 자기가 옳다고 싸우는 동안 민생은 도탄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쯤이면 정당이 없느니만 못하며 정부가 없느니만 못하다. 도대체 국민이 권한을 위임한 이유를 모르는 후안무치하며 탐욕밖에 모르는 반공(反公)적 집단이라 하겠다.

한 시대는 그 시대가 풀어야 할 과제가 있다. 그 과제를 푸는 방식은 여려가지 있을 수 있지만, 필수 바탕은 민생의 안정이다. 민생의 안정이 없는 상태에서 무슨 개혁이 성공할 수 있을까. 단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이벤트 행사에 불과할 것이다. 법과 제도의 경직화와 고착화는 국민 개개인의 자발성과 창의성을 억압한다. 기득권의 카르텔이 지배하는 사회는 국민 전체의 역동성을 상실하고 집단이기주의로 무장한 정당 간의 패거리 싸움만 남는다. 거기에 줄 서지 않으면 외부와의 연결이 하나도 없는 하나의 섬으로 살아야 한다. 우리는 조선 후기에 그러한 역사적 사실을 너무나 뼈아프게 새기고 있고 급기야 멸망에 이르렀음을 잘 알고 있다.

이러한 사회에 백이와 류하혜 같은 행동을 하는 자가 조직 속에 있다면 어떠한 취급을 받을까. 독자들이 판단해 보시라.

“백이는 그 임금이 아니면 섬기지 않으며 그 벗이 아니면 벗하지 않으며 악인의 조정에 서지 아니하여 악인과 말하지 않더니, 악인의 조정에 서서 악인과 말하기를, 마치 조회 의관을 입고 도탄(塗炭:진흙과 숯)에 앉듯이 하였으며, 악을 미워하는 마음을 미루어 향인과 함께 섬에 그 관이 바르지 않거든 아랑곳하지 않고 떠나가서 더럽힐 듯이 생각하였다. 이런 까닭으로 제후가 비록 좋은 말로 초빙해도 받지 않았으니, 받지 않음은 벼슬에 나아감을 깨끗하게 여기지 않은 것이다.

류하혜는 더러운 군주를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낮은 관직을 천시하지 않고 나아가 자신의 능력(賢德)을 숨기지 않아 반드시 그 道로써 하며 버림받아도 원망하지 않으며 액궁(阨窮)을 당해도 근심하지 않더니, 그러므로 ‘너는 너고 나는 나니, 비록 내 곁에서 웃통 벗고 알몸을 한들 네가 어찌 나를 더럽히랴?’ 하니, 그러므로 유유히 함께 하면서도 정도를 잃지 않아서 붙잡아 만류하면 그쳤으니, 만류함에 그친 것은 떠남을 깨끗하게 여기지 않은 것이다.”

백이는 아예 그들을 끊고 벼슬에 나감을 깨끗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며 류하혜는 그들이 아무리 못된 짓을 해도 어울리되 자신은 정도를 잃지 않은 사람이니 물러남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다.

이들이 오늘 한국의 정치문화ㆍ조직문화 풍토에서 공직자로 산다면 그들의 운명은 어찌 될까. 백이는 교류하지 않는 사람이니 벌써 사표 내고 떠났을 것이니 여기서 논할 필요조차 없다고 하겠다. 류하혜는 어떤 취급을 당할까. 부정부패한 자들과 어울리되 자신은 정도를 유유히 지켰으니, 그 조직 속에서 어떠한 존재로 취급당할지 독자는 생각하시라.

기실 백이와 류하혜 두 분의 공통점은 공(公 )을 지키고 실천한다는 것이다. 아 공(公)을 지키고 실천함이 이토록 어려운 것인가. 그러니 노무현 전 대통령이 “‘조선 600년 동안 권력에 맞서 싸운 사람은 하나도 성공하지 못했다.’ ‘정의사회 구현이란 말은 누군들 못하나. 단지 누가 실천하느냐가 중요하다.’”고 토로했던 것처럼 옳은 말과 좋은 말은 삼척동자도 한다. 그러나 우리 5천년 역사에 이를 실천한 사람이 없다는 것이 가슴 아플 뿐이다.

공(公)을 지키고 실천하는 사람이 없는 시대를 암흑기(暗黑期)라 한다. 오늘 우리 사회는 암흑의 시대를 살고 있다. 공(公)을 지키는 사람을 선비라 하니 선비가 없는 시대가 암흑의 시대인 것이다. LH공사 직원이 직무상 기밀을 이용한 투기로 참 시끄럽다. 이 암흑의 시대, 이권 쟁탈의 시대에 국토교통부ㆍ기재부의 하수인 격인 LH공사의 부조리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물론 투기한 자들이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말단의 하수인의 부조리가 이 정도라면 나머지는 말하지 않아도 자명한 것이다. 어찌 법을 따지고 수사를 해야 그 비리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단 말인가.

누가 믿나. 아무도 믿지 않는다. 헌법기관과 정부 각 부처가 어떠한 해결책을 내놓아도 심지어 수사 결과가 이렇다고 발표하고 사법부의 판단이 이렇다고 해도 국민은 아무도 믿지 않는다. 무신불립(無信不立)이다. 국민의 신뢰가 없이는 모든 것이 헛되고 공허하다.

신뢰가 없는 암흑의 시대에 국민의 마음을 훔치려는 간사한 자가 있으니 나는 청렴결백한 사람이라 주장하는 자들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대체로 두 가지 종류이니 하나는 경제적 능력이 없는 자이거나 다른 하나는 정치적 무능자이다. 이들이 진정 청렴하다면 백이와 류하혜 중 한 사람이어야 국민의 신뢰를 얻을 것이며 후대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정치적 무능자는 오늘의 잘못된 법과 제도에 순응하며 이미 고착화와 경직화된 기득권층의 옹호자에 불과한 자로 당대 국민의 정당한 평가를 받을 것이다.

핀셋정책이 바로 정치적 무능자들이 입안한 정책이니, 자산이라는 정치인이 겨울에 신발을 벗고 냇물을 건너야 하는 백성을 보고 자신의 수레로 건네주었다는 고사가 있다. 이에 대하여 맹자는 ‘은혜롭기는 하나 정치할 줄 모르는 자이다.’ 평하셨다. 정치란 현실의 부조리를 바로잡는 것이지 은혜를 베푸는 것이 아니다. 자산이 모든 국민을 자신의 수레로 건네준다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진정한 정치인은 모든 국민이 스스로 건널 수 있도록 다리는 가설하는 자이다. 마찬가지로 행정이 일일이 핀셋을 들고 하나씩 들춰내려면 전 공무원이 24시간 일해도 공평무사한 훌륭한 정책이라고 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는 담당 공무원을 못살게 하는 일이며 아울러 국민의 불신을 자초하는 일이다.

인재는 야(野: 현 제도권에 속하지 않은 사람)에서 구한다고 했다. 이는 공평무사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이다. 이미 어느 곳에 얽매인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공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큰 정치하려는 자는 반드시 야(野)에서 인물을 구했으니, 요순이 그랬고 유비가 그랬고 전국시대 패도정치를 구가하던 시대에도 제환공이 그러했다.

이미 고질병인 양극화ㆍ저출산ㆍ수도권 1극의 폐해를 노정시킨 법과 제도와 행정패러다임에 순응하거나 그 틀 안에서 핀셋을 들고 해결책을 찾는다면 무능한 정치집단으로 역사에 영원히 낙인찍힐 것이다.

국망의 원인이 많지만 그 근본은 관료제의 타락이다. 즉 공(公)을 실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리사욕과 그들만의 탐욕으로 행정을 집행함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이다. 관료제의 타락은 중국이란 거대한 나라도 멸망으로 이끌었으며 조선 역시 관료제의 타락으로 멸망하였다. 법과 제도라는 공권력을 집행하는 관료의 타락은 반드시 관료와 밀착된 특권층을 형성하며 특권층의 형성이 바로 나라가 망하는 길이다. 지식인의 타락 역시 같은 맥락이다. 지식인은 잘난 국민이니 그들이 먹고사는데 무슨 어려움이 있으며 어느 정권인들 무슨 상관이 있으랴.

그 해결책은 무엇인가. 관리 중심의 집행에서 국민 중심의 집행으로 전환하면 모든 것이 순리로 돌아간다. 양극화ㆍ저출산ㆍ수도권 1극의 원인은 국민의 역동성 상실에 기인한다. 국민의 역동성은 왜 상실하는가. 관리 중심의 집행으로 특권층의 형성에 기인한 것이다. 이를 해체하는 길은 사업자를 통한 행정집행을 국민이 직접 집행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론과 학설, 복잡한 통계, 일명 말만 하면 선진국의 사례 운운하나 정말 중요한 것은 전 세계 어느 나라도 대한민국의 발전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도와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결론은 대한민국의 국민이 인간답게 사는 방법은 대한민국의 국민에게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민심을 얻으면 공(公)이며 진리요 민심이 돌아서면 비리(非理)며 부조리(不條理)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심(民心)은 헌법 위에 군림하는 초헌법적 존재이다. 그러니 어찌 법조문 따위로 국민을 통제할 수 있겠는가.

고주환 논설위원 kjmong147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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