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기한 풍경을 보았다. 작은 공부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 공부를 주관하는 분의 아내가 앉아 있었다. 남편이나 아내가 강의하는 자리에 배우자가 참석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참석자들이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 분은 남편이 주관하는 공부가 좋아서 참석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순간, 이 부부의 삶이 눈앞에 그려졌다. 서로에게 얼마나 정직했는지 미루어 알 수 있었다. 서로의 삶을 존중하며 살았을 두 분의 가정생활이 동영상처럼 펼쳐졌다. 두 분이 함께 다니는 모습을 자주 보아왔던 터라 금슬의 정도는 익히 알고 있었으나 그래도 공부모임까지 참여하다니 놀라웠다.
사실 부부가 신뢰의 상태를 유지하고 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노력과 절제가 필요한 일이다. 불꽃같은 사랑으로 한 몸을 이룬 부부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그냥’ 사는 경우가 다반사다. 마지못해 산다는 사람도 있다. 약간의 역설이 섞인 말이지만, 서로를 ‘웬수’라고 지칭하는 경우도 있다.
원인은 두 가지다. 하나는 신뢰의 문제고, 다른 하나는 돈의 문제다. 신뢰가 깨진 부부는 무늬만 부부다. 그러다가 상황이 악화되면 돌아서버린다. 돈 때문에 티격태격하는 부부의 상황은 더 좋지 않다. 부부간에 돈이 믿음의 기준이 되면 신뢰와 존중은 사라져버리고 악다구니만 남게 된다. 안타깝지만 이게 현실이다.
큰 성취를 위한답시고 가정생활에 소홀한 이들도 있다. 깨달음을 찾아서 엉뚱한 곳을 헤매는 이들도 적지 않다. 중국 고전 중의 하나인 장자(莊子)의 응제왕 편에는 ‘게함’이라는 신통한 무당과 ‘열자’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최주환 (전)한국사회복지관협회장 |
열자가 스승에게서 배운 것보다 게함이라는 무당의 신통력에 반해서 호들갑을 떨었다. 스승이 게함과 세 번 만나는 과정에서 신통력이라는 것이 다 헛된 것임을 열자가 뒤늦게 깨닫는다. 그 이후로 열자는 아내에게 지성을 다하고 가축에게도 정성을 다했다고 한다. 비로소 참 사람이 된 것이다. 진리나 깨달음이 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곳에 있음을 장자는 강조한 것이다.
이번에 새로 작심한 공부는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시작했다. 사회복지와 관련된 책에서 벗어나 삶의 본질에 천착하는 공부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존경하는 선생님께서 마련한 강좌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참석하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더니 흔쾌하게 들어주셨다. 주 교재는 오래 전에 사놓았지만 벽돌책이어서 책꽂이 꼽아두고 있던 책이었다. 공부는 강독과 토론을 병행한다고 하셨다. 책을 뽑아서 과제로 말씀하신 분량을 여러 번 읽고 수업에 참여했다. 바로 그 자리에 사모님이 앉아계셨던 것이다.
새로 시작한 공부의 내용도 귀중했지만, 두 분의 두터운 믿음을 보는 것만으로도 아주 큰 공부가 되었다.
손정임 기자 sjo544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