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것을 다 가졌는데도 부질없는 욕심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인물들이 많다. 사기본기(史記本紀)의 마지막에 있는 효무본기(孝武本紀)편의 한나라 무제가 그랬다. 무제는 중국의 황제들 가운데 위대한 인물로 평가된다. 태학을 설립해서 인재양성에 힘썼고, 실크로드를 개척해서 서역으로 가는 길을 열었으며, 중국의 사상과 문화를 통일한 인물이다. 그런데 정권이 안정기에 접어들자 신선을 찾았고, 불로장생하겠다는 망상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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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주환 (전)한국사회복지관협회장 |
자연히 망상을 이루어주겠다는 무당들이 나타났고, 한무제는 그들을 가까이 했다. 얼빠진 사람이 된 것이다. 금세 나라의 재정은 부실해졌고, 백성들의 삶은 곤두박질쳤다. 늘어난 부역과 세금 때문에 백성들은 고향을 버리고 떠돌이가 되었다. 한무제가 신선을 찾는다는 소문이 돌자, 이런 망상을 부채질하는 무리들이 꼬여들었다.
이 때 등장한 이소군이라는 무당이 있다. 자기는 항상 70살이며, 귀신을 물리칠 수 있고 늙지 않는다고 했다. 부엌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면 영험한 물건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황금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장담했다. 1,000년을 살았다는 안기생이라는 신선을 만났다고도 주장했다. 무제는 이 무당이 허망하게 병사했는데도 미련을 거두지 못하고 다른 무당들이 그를 모방하게 만들었다.
이어서 이소옹이라는 무당이 등장한다. 그는 한무제가 총애하던 왕부인이 세상을 떠나자 왕부인의 영혼을 불러내서 한무제와 만나게 했다. 한무제는 이소옹을 크게 칭찬했지만, ‘장막을 통해 만났다’는 기록을 보면, 조작의 냄새가 스멀거린다. 왕부인의 목소리와 몸매를 닮은 대역이 나섰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만 무제는 이소옹에게 재물도 넉넉히 주고 예우했다고 한다.
결정적인 장면은 난대라는 이름을 가진 무당이다. 그는 무엇보다 허우대가 그럴싸했던 모양이다. 기록에 의하면 난대는 ‘키도 크고 잘 생긴데다가 과감하게 큰 소리를 치면서 주저함이 없었다’고 했다. 그의 겉모양만 보더라도 일정한 믿음이 생겨날 정도였다는 말이다. 그는 말하기를 바다 밑을 다니다가 신선들을 여럿 만났다고 했다. 따질 것 없이 거짓말이다.
또 자기 스승의 말이라면서 ‘황금을 만들 수 있고, 강의 터진 둑을 막을 수 있으며, 불사약을 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신선도 불러 올 수 있다’고 했으나 허튼 이야기였다. 그런데도 무제는 난대에게 큰 벼슬을 주고 호의호식을 보장해 주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난대의 거짓말은 들통 났고, 그는 죽음을 맞았다. 이후에도 한무제의 망상을 실현해 보겠다는 무당들이 등장했으나 다 거짓말쟁이였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한무제는 중국의 역사에서 추앙의 대상인 인물이다. 그의 업적이 대단했고,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는 솔직함도 있었다. 그런데 유독 신선을 만나겠다는 욕망을 버리지 못하고 불로장생의 미망을 내려놓지 못했다. 망상이 그를 집어삼킨 것이다. 그러다보니 그럴싸한 말솜씨로 무장한 술사들의 거짓말에 농락당하고 말았다.
책에는 한무제가 ‘무당들의 기괴하고 빙빙 돌리는 말에 싫증과 권태를 느꼈으나 끝내 얽매이고 속박되어 무당들의 꼬드김을 끊지 못했다’고 했다. 무당들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한 것이다. 이른바 ‘심리적 노예상태’로 추락해 버렸다. 한무제만이 아니다. 여러 나라의 역사를 들춰보면 신통하다는 무당에게 정신 줄을 내주고, 나중에는 그 자신마저 허깨비로 전락한 권력자들이 적지 않다. 부질없는 망상은 패가망신을 부를 뿐이다.
손정임 기자 sjo544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