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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주환 (전)한국사회복지관협회장 |
어느 책에선가 오늘의 시대를 ‘참을성이 사라진 시대’라고 진단한 글을 보았다. 단순히 인내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자신을 다듬고 적절한 선에서 멈출 줄 아는 품성이 사라졌다는 것을 지적한 내용으로 기억한다. 도덕경을 공부하면서도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그칠 줄 아는 사람은 위태로움을 만나지 않는다’는 가르침을 보면서 자족하는 삶의 중요성을 다시 깨닫는다. 우리는 ‘더 많이, 더 높이, 더 크게’를 입에 달고 산다. 그러나 세상은 과도한 욕망을 끝없이 떠받치지 못한다. 어느 순간에 무너지고 부서지고 추락하고 만다. 이런 사례가 수없이 많은데도 참지 않는다. 욕심을 멈춰야 몸과 마음이 평안해진다.
사마천이 쓴 사기열전에는 2,000명 정도의 인물이 등장한다. 그 인물들을 두 가지로 분류해 볼 수 있다. ‘자족하고 멈춘 사람’과 ‘욕심 때문에 망한 사람’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한신과 장량이다. 한신은 뛰어난 전공을 올렸음에도 나중에 불행한 죽임을 당한다. 권력에 대한 욕심 때문에 때를 읽지 못하고 멈춤을 놓쳤다. 욕심은 그를 죽음의 자리로 내몰았다. 반면에 장량은 유방을 도와 천하를 평정했지만, 논공행상에서 작은 것을 택한다. 그러고는 도술을 배우겠다는 핑계를 앞세워 권좌를 버리고 낙향해서 조용하게 지냈다. 욕심을 거두고 정점의 자리에서 스스로 내려온 것이다. 이 멈춤이 피와 죽음이 난무하는 험난한 시국을 비켜가게 했다.
요즘 정치권에서 보여주고 있는 ‘폭주’의 이야기들은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자신이 가진 권세를 이용하여 온갖 못난 짓을 자행하고 있다. 그런 일을 앞장서서 벌이고 있는 두 사람의 표정이 평화롭지 못하다. 목소리에는 서슬이 돋아있다. 눈초리에도 날카로움이 서려있다. 이런 사람들이 진영의 정점에 있으니 세상이 시끄럽다. 부드럽게 끌어안는 자세가 필요한데 도무지 밀치는 일에만 골몰하고 있다. 당장 멈춰야 한다. 그 자리에서 내려오라는 것이 아니다. 지금 하는 일의 정당성을 살피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 정점은 항상 위태롭다. 그 자리에서 한 발만 잘못 디디면 돌이킬 수 없는 역사적 불상사를 초래하게 된다.
조금 결이 다르긴 하지만, 성경에도 비슷한 인물이 있다.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기드온’이다. 기드온은 300명의 용사로 10만 명이 넘는 미디안의 대군을 물리친 이스라엘의 영웅이다. 그는 왕위 제안을 단칼에 거절하는 용단을 보였지만, 나중에는 온갖 욕심을 멈추지 못하고 호화로운 삶을 누렸다. 그 결과는 실로 참담했다. 자식들이 한꺼번에 몰살당하는 일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른바 ‘가짜 멈춤’이 초래한 파국이다. 도무지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들이 많다. 멈춰야 할 시점을 놓치거나 아예 멈추지 못하겠다는 사람도 많다. 멈춰야 산다. 바쁠수록 멈춰서 살피고, 정점에 있는 사람일수록 진정한 멈춤의 지혜가 필요하다.
이영재 기자 sd534@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