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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와 네타냐후, 그들은 어쩌다 ‘악마’가 되었는가 |
세계정치는 종종 한 개인의 선택이 역사를 바꾼다. 그러나 그 선택이 언제나 이성의 산물인 것은 아니다. 때로는 두려움, 권력욕, 그리고 정치적 생존 본능이 뒤엉켜, 지도자를 극단으로 몰아넣는다. 오늘 우리가 목도하는 도널드 트럼프와 베냐민 네타냐후의 행보가 바로 그렇다.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라는 구호 아래 국제질서를 거래의 대상으로 전락시켰다. 동맹은 협력의 대상이 아니라 비용을 따져야 할 계약이 되었고, 외교는 신뢰가 아닌 압박과 위협의 언어로 변질됐다. 그의 정치 방식은 단순했다. 복잡한 현실을 적과 아군으로 나누고, 불안을 자극해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의 규범과 국제사회의 합의는 번번이 후순위로 밀려났다.
네타냐후 역시 다르지 않다. 장기 집권 속에서 그는 국가 안보를 정치적 생존의 도구로 활용해왔다. 끊임없는 외부의 위협을 강조하며 내부의 균열을 봉합하고, 비판을 ‘국가에 대한 도전’으로 치환하는 방식이다. 특히 중동 정세의 긴장 속에서 강경 일변도의 정책은 갈등을 해소하기보다 오히려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문제는 이들이 ‘악마’이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이들은 철저히 인간적인 정치인들이다. 권력을 유지해야 하는 압박, 지지층을 잃을 수 없다는 공포, 그리고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오만이 결합될 때, 지도자는 스스로를 극단으로 밀어 넣는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 우리가 보는 ‘강경한 언어’와 ‘위험한 선택’이다.
우리는 흔히 지도자를 도덕적 잣대로 재단하며 선과 악으로 구분하려 한다. 그러나 진짜 위험은 ‘악마화’ 그 자체에 있다. 특정 인물을 절대악으로 규정하는 순간, 문제의 구조적 원인은 가려지고, 같은 유형의 지도자는 언제든 다시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와 네타냐후는 시대가 만들어낸 산물이다. 분열된 사회, 불안한 경제, 그리고 정치적 양극화가 그들을 키웠다. 그렇다면 질문은 바뀌어야 한다. “그들은 왜 그렇게 되었는가”가 아니라, “우리는 왜 그런 지도자를 반복해서 선택하는가”이다.
정치는 결국 시민의 수준을 반영한다. 분노와 공포에 기대는 정치가 힘을 얻는다면, 그것은 지도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징후다. 지금 필요한 것은 또 다른 ‘강한 지도자’가 아니라, 이성적 판단과 책임 있는 선택을 하는 시민의 힘이다.
악마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책임에서 우리 역시 자유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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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교 대표기자 cambroadcast@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