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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주환 (전)한국사회복지관협회장 |
은퇴 이후, 정기적인 독서모임에 참석하고 있다. 세 종류의 독서모임이다. 하나는 장자(莊子)를 읽는 모임이다. 매주 월요일에 모여서 일정부분을 강독하는 모임이다. 평화를 사랑하는 김조년 교수님이 이끄는 모임이어서 차분한 이야기들이 많다. 속도가 다소 더딘 느낌이 있지만, 글속에 숨어있는 진주를 캐내는 일이 많아서 매번 감동을 경험한다. 지난주에는 외물(外物)편의 일부를 읽었다. 허풍과 실속을 생각하게 하는 내용이 있었다. 다급한 요청을 이해하지 못하고, 나중에 큰 것으로 채워주겠다는 우화가 있었다. 주변에 널린 허풍들이 아른거렸다. 특히 선거과정에서 교묘하게 다듬어진 거짓말들이 사실처럼 오가는 세태를 보는 것 같았다.
다른 독서모임은 논어(論語)를 읽는 모임이다. 매주 목요일에 세 사람이 모여서 공부하는 모임이다. 동서양의 고전을 두루 섭렵한 김홍한 목사님과 역사에 조예가 남다른 권용명 관장님이 함께 한다. 살아 온 배경과 관심분야가 달라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다. 광속으로 변하는 시대에 무슨 구닥다리를 공부한다고 시간을 허비하냐는 핀잔도 들었지만, 공부할 때마다 깨우침이 있어서 목요일이 기다려질 정도다. 지난 시간에는 ‘회사후소(繪事後素)’가 생각을 붙잡았다. ‘먼저 흰 바탕이 있은 후에 그림을 그리는 게 바른 순서’라는 뜻이다. 요즘처럼 순서가 온통 어그러진 시대에 바른 순서가 무엇인지를 새삼 돌이켜 보게 했다.
매월 모이는 독서모임도 있다. 이 모임은, 발제를 맡은 회원이 추천하는 책을 읽고 소감을 나눈다. 지금은 문을 닫은 ‘계룡문고’를 살리자는 취지로 결성된 모임이었는데, 아직 이어져 오고 있다. 15명의 회원들이 워낙 쟁쟁해서 만날 때마다 색다른 시각을 경험한다. 지난달에는 반수연 작가의 ‘파트타임 여행자’라는 작품을 읽었다. 등장하는 인물들이 다 상처와 단절을 안고 있어서 읽는 내내 우울한 느낌이 잦았다. 그런데 작품마다 말미에 회복의 문을 스스로 여는 암시가 있어서 희망과 웃음을 나눌 수 있었다. ‘잃어서는 안 된다고 믿었던 것들을 잃고도 살아진다는 것은 생의 비정이 아니라 생의 비밀일지도 모른다’는 대목이 기억에 남는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면 기존의 생각이 흐려지거나 옅어지는 경험을 자주한다. 책을 읽다가 마음을 두드리는 부분을 만나면 그 구절이나 단락이 나를 지배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지금까지의 생각을 되짚어보는 계기로 삼으면 그만인데, 그것이 유일무이한 나침판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다. 꿀벌은 여러 꽃에서 꿀을 모아오지만 결국 자신의 꿀을 만들어 낸다. 우리도 여러 책에서 지식이나 감동을 만나게 되지만, 자신의 삶을 세우는 지혜를 찾는 일은 오롯이 자신이 해내야 할 몫이다. 책을 목적지 삼으면 안 된다. 책 속에 들어갔으면, 그곳에서 보물들을 안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책 안에 머물러 있으면 미몽에서 헤매게 된다.
조명호 기자 cambroadcast@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