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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주환 (전)한국사회복지관협회장 |
한국인의 특성과 한반도의 지정학적 설움을 극복해 가는 과정을 유니크하게 풀어쓴 책이 있다. 홍대선이 쓴 ‘한국인의 탄생’이라는 책이다. 다소 도발적인 표현들이 적지 않지만,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들도 많다. 평상시에는 원수처럼 지내다가도 재난을 맞으면 이상할 정도로 대단한 결집력을 보인다거나,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에 둘러싸인 형국인데도 장구한 세월동안 망하지 않은 것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처절한 생존의지가 작동한 기적이라는 분석 등은 공감할만한 내용이다. 재미있는 것은, 한국인이 일상생활에서 내뱉는 욕(辱)에 관한 서술이다. 욕은 남의 인격을 무시하는 모욕적인 말인데, 이 욕이 한국에는 너무 풍성하다는 것이다.
홍대선은 한국의 욕이 강도가 아주 심하고 다양해서 가까운 언어를 사용하는 일본인을 놀라게 한다고 썼다. ‘창자를 꺼내서 줄넘기를 하고, 눈알을 뽑아 탁구를 치고, 눈알과 불알을 바꿔 달아주겠다’는 정도는 탐색전 수준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역별로 ‘전투적인 부산 스타일, 직설적인 영남 스타일, 시적인 호남 스타일, 자기 전에 생각날 만큼 깊이를 자랑하는 충청도 스타일, 경쾌한 강원도 스타일, 가냘파서 무시 받는 서울 스타일’ 등이 있다고 했다. ‘입과 귀에 감칠맛 나게 착 감기는 욕’의 사례를 언급하진 않았지만, 생각해보면 꽤 그럴싸한 분석이다. 게다가 한국의 영상물이 국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씨발’도 국제화되었다고 했다.
고상하게 책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욕에 관한 이야기로 넘어가서 ‘씨발’의 국제화까지 거론하게 된 배경이 있다. 얼마 전 집에서 야구를 보았다. 내가 응원하는 팀의 선수가 투수의 볼이 어떤 성질의 볼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는지 힘껏 배트를 돌렸는데 그만 헛스윙을 하고 말았다. 그 순간 타자의 얼굴이 TV화면에 클로즈업 되었다. 자연스럽게 선수의 입동작도 함께 보였다. 그때 선수가 내뱉은 말은 굳이 따져 보지 않아도 ‘씨발’이었다. 점수가 뒤져있는 상황에서 앞에 주자도 있었다. 얼마나 안타를 치고 싶었겠는가. 그런데 헛스윙에 아웃까지 당했으니 그 허탈함과 속상함을 단어가 몇 개 겹치는 탄식보다 간결하게 ‘씨발’로 대신한 것이다.
요즘 청소년들에게 몇 가지 욕은 상용어가 된 것 같다. 욕이 말과 말을 이어주는 접속부사가 된 느낌이다. 욕이 중간에 끼지 않으면 말을 이어가지 못할 것처럼 보인다. 태권도 학원차량에서 내린 어린아이들도 ‘씨발’과 ‘졸라’를 말끝마다 빼놓지 않는 것을 본 적도 있다. 물론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어른도 적지 않다. 욕이 척박한 환경이나 상황에 대한 언어적 배설효과를 갖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으나, 욕은 우리의 정신세계를 누추하게 만들 뿐이다. 말에는 그 사람의 인격과 품격이 담겨있는 법이다. 동서양의 수많은 경전들도 말과 혀를 조심하는 것이 삶의 바른 자세라고 가르친다. 우리의 언어습관을 살피고 다듬어야 할 이유다.
이영재 기자 sd534@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