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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주환 (전)한국사회복지관협회장 |
도종환 시인이 새로 펴낸 산문집 ‘상처와 결별하기’를 읽었다. 그가 겪은 여러 일들, 특히 상처와 좌절의 흔적들을 떠올리며 다시 일어섰던 과정을 기록한 글이다. 고상한 단어나 현란한 글쓰기 기법이 전혀 없는 담백한 글이었다. 그런데도 다짐을 새길 수 있어서 좋았다. 책을 읽는 동안에 줄기차게 따라붙은 생각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오래 전에 읽은 ‘최시형 평전’ 안에 담긴 내용이다. 최시형은 최제우를 이어 동학을 체계화한 인물이다. 그는 경천(敬天), 경인(敬人), 경물(敬物)을 강조했다. 최제우가 주창한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人乃天)에서 한걸음 더 나간 것이다. 최시형의 이 삼경사상이 도종환의 글 곳곳에 스며있었다.
도종환은 접시꽃 당신이라는 시집으로 유명해진 인물이다. 시집에는 갑작스럽게 유명을 달리한 아내에게 바친 사랑의 시들이 가득했다. 접시꽃 당신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가 마지막 구절이다. 그런데 도종환은 이 애절한 시를 뒤로 하고, 다른 여자와 재혼한다. 손가락질이 쏟아졌다. 몇 년 뒤에는 전교조 활동으로 교직에서 쫓겨난다. 또 느닷없이 정치에 입문하더니 장관까지 지낸다. 이 모든 과정에서 도종환에게 ‘넌 끝났다’는 소리가 저주처럼 따라붙었다. 상처를 다시 덧나게 하는 말들도 수없이 들었을 것이다. 그때마다 그는 ‘하나의 길을 버려서 다른 하나의 길을 얻는다’는 생각으로 이겨냈다고 했다.
도종환의 산문집에서 최시형의 삼경(三敬) 사상을 떠올린 것은, 그가 상처와 결별하는 과정에서 하늘과 사람과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최시형이 강조한 경천은 순리(順理)사랑으로, 경인은 이웃사랑으로, 경물은 자연사랑으로 읽었다. 최시형은 다른 세상을 꿈꾸되, 먼저 지극한 마음을 앞세워 조화로운 세상을 설계했다. 도종환이 보여준 상처와 이별예식도 상처와 맞서 싸우기보다는 다른 방식을 택했다. 안으로는 들여다보고, 밖으로는 이해와 수용의 자세를 유지함으로써 세상과 조화를 이루려고 했다. 그래서 ‘회복’이 예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회귀가 아니라 이전과 확실하게 결별하는 새로운 출발임을 알게 된 것이다.
사실, 도종환의 이번 책에는 위로의 메시지가 별로 없다. 후반부로 갈수록 자기성찰과 사회적 영성을 강조하는 글들이 많다. ‘나를 내어 너를 채운다’는 말이나 ‘바탕이 무늬를 이기면 촌스럽고, 무늬가 바탕을 이기면 간사하다. 바탕과 무늬는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논어를 인용한 글에서는 삶의 바른 순서를 강조한다. 인간관계도 너무 뜨겁거나 시리지 말 것을 당부하는 글에서는 차분한 삶의 자세가 읽힌다. ‘미움 받더라도 미움으로 되갚지 말 것’을 주문하는 글과 성경을 인용한 몇 곳의 글에서는 성숙한 삶의 자세가 무엇인지를 일깨운다. 이 책은 위로를 기대하고 열지만 ‘나로부터 새 세상이 시작된다’는 깨달음을 얻게 하는 책이다.
조명호 기자 cambroadcast@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