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크게 의식하지 못하고 내뱉는 말 중에 ‘나중에 하겠다’라는 게 있다. 나중에 공부하겠다는 말부터 나중에 운동하겠다는 말 그리고 나중에 실천해 보겠다는 말에 이르기까지 지금 시작해야 할 일을 다음으로 미룰 때 앞세우는 말이다. 그런데 별생각 없이 흘러나오는 이 ‘나중에’라는 말이 일은 물론이고, 삶을 꼬이게 만드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나중에 하겠다는 말은 단순히 지금 하지 않겠다는 말을 넘어서 다음에도 못하는 결과와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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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주환 (전)한국사회복지관협회장 |
실제로 나중에 하겠다는 말의 내용이 정말 나중에 실천으로 옮겨진 사례는 매우 드물다. 운동을 하겠다면서 사놓은 운동화는 신발장에서 잠자고 있고, 나중에 읽겠다는 책도 책상 구석에 꽂혀있는 게 현실이다. 심지어는 인생의 중대한 계획까지도 미루고 미루다가 인생 자체가 허망한 형편에 놓일 수도 있다.
나도 시간이 언제까지나 내 편일 것으로 생각했다가 놓친 일들이 많다. 앞으로 늙을 것이라는 명제에는 기꺼이 동의했지만, 늙은 이후의 삶은 나중에 준비해도 늦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그때까지 기다려 줄 것으로 믿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에 늙어버렸다. 건강도 공부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어느 순간에 건강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알게 됐고, 동양고전을 공부하겠다는 다짐도 이런저런 핑계에 실려서 번번이 물거품으로 끝나고 말았다.
다음에 해도, 나중에 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살아보니 나중에는 없었다. 나중에 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지만 그걸 가능하게 만드는 시간이나 체력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뒤늦게 부산을 떨고 있지만 시간은 벌써 지나가버렸고 좋은 기회들도 아득히 먼 곳으로 흘러가버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늦게라도 운동을 시작해서 매우 안정적인 건강상태를 유지하게 된 점이다. 운동을 시작한 계기는 응급실에 실려 가서 긴급한 시술을 하고 난 이후부터다. 의사로부터 운동을 하지 않으면 큰 일이 날수도 있다는 섬뜩한 경고를 들었다. 그때까지는 조금 형편이 나아지면 운동을 하겠다고 다짐만 여러 번 했었으나 이것저것 따질 겨를 없이 걷기 시작했다. 지금은 정해진 시간이면 무조건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선다. 운동의 내용은 조금씩 달라지고 강화되었지만 하루도 미루지 않고 있다.
동양고전 공부도 늘 마음에 두고 있었지만 무슨 핑계꺼리가 그리도 많았는지 시작했다가는 덮어버리기를 여러 번 반복했었다. 그러다가 끝내는 손을 놓아버렸었는데, 요즘은 선물처럼 다가온 기회를 붙잡고서 벽돌처럼 두툼한 책들과 기분 좋게 씨름하고 있다.
물론 나중에 할 일이 있긴 하다. 큰돈이 들어가는 일이나 준비하는데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예컨대, 긴 일정의 해외여행이나 공식과정에 입학해서 공부를 하는 일 등이 그렇다. 이런 일까지 무작정 시작하자는 건 아니다. 준비가 필요한 일은 차근차근 준비해야 한다. 준비하는 과정이 성취를 담보하고 있어서 적극적인 준비는 절반의 성취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금 당장 시작해도 될 일을 미루는 습관과 결별하지 못하는 경우다.
여건이 완비되면 그때 하겠다는 사람이 더러 있지만, 여건이 완비되는 날이 올 가능성은 없다. 그래서 미루지 말고 지금 시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또 벼려야 버릇이나 다른 사람이 좋아하지 않는 일들도 꾸물댈 필요 없이 훌훌 털어버리는 게 좋다. ‘나중에’로 미루면 결국 한숨 쉴 일만 늘어나게 될 뿐이다.
손정임 기자 sjo5448@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