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2월이면 한 해를 돌아보고 감사한 일을 찾는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고, 큰 탈 없이 연말에 이르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긴 하다. 그래도 올 한 해를 보내면서 특별하게 감사한 일을 찾는 이유가 있다. 감사한 일은 감사한 사람과 연관되어 있다. 그 사람들을 꼼꼼하게 기억하기 위해서다. 올해 내 마음을 들뜨게 하고 기쁘게 한 일은 크게 세 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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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주환 (전)한국사회복지관협회장 |
2025년에는 우리 집안에 감사한 일이 겹쳤다. 기쁘고 감사한 일의 으뜸은 손주를 본 일이다. 아기를 가지는 일에 소극적이던 딸이 갑자기 아이를 가지겠다고 부산을 떨더니 예쁜 쌍둥이를, 그것도 공주와 왕자를 품에 안았다. 100일을 맞아서 미국까지 쫓아갔을 때 벌써 방긋거리기도 하고. 노래를 불러주면 뭐라고 따라 부르기도 해서 집안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아기들이 얼마나 예쁘던지 한 달이 금세 지나갈 정도였다. 두 번째 감사한 일은 아들이 짝을 찾았다고 해서 양가 부모들이 상견례를 나눈 일이다. 아들이 자신의 짝이라면서 처음 데리고 왔을 때부터 마음이 흡족했다. 무엇보다도 얼굴에 웃음을 담고 있어서 고마웠다. 둘이 계획하는 일도 원만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아서 흐뭇하다. 딸과 아들이 자기 세상을 당차게 만들고 있어서 감사할 따름이다.
개인적으로 감사한 일은 비교적 건강하게 12월을 맞은 일이다. 올 해도 지인들의 안타까운 소식을 몇 번 접했다. 가깝게 지낸 친구가 이승을 버리고 저쪽 세상으로 넘어간 일이며,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까지 몸과 마음이 내려앉은 대학동기도 있었다. 물론 나도 썩 건강하지는 않다. 무릎도 시원치 않고 몸도 예전만큼 날렵하지 못하다. 정기적으로 다니는 병원도 3곳이다. 먹는 약도 여러 가지다. 그러나 거동이 불편할 정도가 아닌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이다. 아직 씩씩하게 산에도 다니고, 하고 싶은 일도 너끈하게 소화하고 있다. 8년 전쯤에 큰 시술을 한 이후로 의사의 주문에 맞춰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운동한 것이, 풀어지지 않은 몸으로 12월을 맞은 힘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허술한 몸이지만 다독이면서 오늘에 이른 것은 감사할 일이다.
올해를 돌아보면서 가정의 겹경사와 비교적 건강한 일 못지않게 감사한 일이 맹자와 장자를 공부한 일이다. 장자는 매주 월요일에, 맹자는 매주 목요일에 공부하고 있다. 두 모임 다 강독모임의 성격이 강하다. 그래서 배우고 깨닫는 것이 더 많다. 사실 나는 주제가 명확한 글을 좋아한다. 그래서 늘어진 글은 멀리 했었다. 그런데 은퇴한 이후에, 늘어진 글이지만 지혜의 보고인 동양고전을 읽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이 때 두 모임을 알게 된 것은 축복이자 감사한 일이다. 처음에는 무척이나 힘들었다. 같은 말이 반복되는 느낌이 들었고, 사전지식이 부족하다보니 글의 참뜻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또 등장인물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다 보니, 글의 흐름을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공부모임에 참여하면서 넓고 높은 생각들을 많이 만났다. 크게 감사한 일이다.
올해는 유난히 감사한 일이 연거푸 찾아왔다. 가슴이 울컥할 정도로 아름다운 일도 많았다. 물론 아쉽고 서운한 일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앞에 열거한 일들에 비견할 바는 아니다. 이렇게 소중한 일들을 안겨준 사람들과 함께 한 올해는, 그래서 더없이 감사한 한 해였다.
손정임 기자 sjo5448@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