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브라이언 헤어’와 ‘버네사 우즈’가 쓰고 이민아가 번역한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라는 책을 보았다. 이 책에서는 ‘협력’을 특히 강조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진화론적 관점이 바탕에 깔려있긴 하지만, 인간이 살아남은 필수전략이 협력이었음을 방대한 자료들을 통해서 밝혀냈다. 협력의 밑바탕에 다정함 혹은 친화력이 자리하고 있음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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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주환 (전)한국사회복지관협회장 |
특히 저자들은 다윈의 말을 인용하면서 ‘자상한 구성원들이 많을수록 공동체가 번성했으며, 많은 수의 후손을 남겼다’고 했다. 그 뒤를 이은 많은 생물학자들도 ‘진화라는 게임에서 승리하는 이상적인 방법은 협력과 친화력을 극대화하는 것이었다’는 기록을 남겼다고도 썼다. 이 책에서는 다정함의 반대쪽에 있는 말로 ‘편견’을 끄집어내기도 했는데, 편견이야말로 다툼과 멸종의 원인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오랜만에 ‘다정함’을 주제로 예쁘게 쓴 글을 다시 접했다. ‘우리는 조금 더 다정해도 됩니다’라는 책이다. 특이한 이력을 소유한 ‘김민섭 작가’의 책이다. 그는 책의 전반부에서 우리가 다정하게 살아야 할 이유를 소소한 사례들과 함께 역설한다. 그러다가 대학사회의 몰인정함을 따갑게 지적한다. 턱없이 낮은 시간강사급여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멕도날드 햄버거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수밖에 없었던 아픈 경험을 회상한다.
이 과정에서 작가는 대학이 지성의 전당으로 포장되어 있는 현실을 직격한다. ‘지금의 대학이 거리의 페스트푸드점이나 편의점보다 그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돌아보라’고까지 통박한다. 그가 까발리려고 한 것은 대학의 편법적인 운영실태도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일부 교수들의 몰인정과 일탈 그리고 무신경이다.
눈여겨 본 부분이 있다. ‘스승의 날을 맞이했을 스승들에게’라는 대목이다. 한 부분을 그대로 옮겨보면 이렇다.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에서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둔 5월14일을 ‘대학원생의 날’로 정하자고 제안을 했다는 내용이다. 그들은 ‘푸코도 한때는 대학원생이었다. 튜링도 한때는 대학원생이었다. 퀴리도 한때는 대학원생이었다. 김윤식도 한때는 대학원생이었다. 모든 교수들도 한때는 대학원생이었다. 거창한 행사는 없더라도 대학원생인 제자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넬 수 있는 날이 되도록 하면 어떨까요?’라면서 절박한 마음을 에둘러 토해냈다고 했다.
인정머리를 저 세상에 내버리고 온 것처럼 행세하는 ‘껍데기 교수’들을 향한 안타까운 절규였던 셈이다. 스승의 날에 대접만 받으려고 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을 살필 줄도 알아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이 책의 백미는 ‘제주도 숙소 숙박권을 드립니다’이다. 제주도에서의 강연이 취소되자 미리 앱으로 예약해 두었던 숙박권을 취소하려 했지만,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서 취소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SNS에 ‘제주도 숙소 숙박권을 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자 사용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나서 그에게 주었다는 내용이다. 중간에 여러 이야기들이 있지만 결과적으로 싸우지도 않고 상처받지도 않고 예쁘게 일이 마무리되었다는 글이다.
나 같았으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온갖 짜증과 압박을 반복했을 것 같다. ‘당신에게 보낸 다정함이 당신을 돌아 더 크게 퍼져 나갈 것’이라고 권면하는 작가에게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저자의 속 깊은 경지에는 이르지 못하겠으나 좀 더 다정하게 말하고 행동하면서 살아야 함을 무겁게 깨달은 독서였다.
손정임 기자 sjo544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