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생 ‘화이부동’ 실천한 홍범도 장군·광복군 17위 등 후손 없어 / 20개 단체 회원 등, “선열들 못 이룬 꿈 계승·실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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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26년 2월 18일(수) 대전현충원 홍범도 장군 묘소에서 열린 행사에서 참배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제공 이남하 사진작가 겸 독립운동기념사업회 이사) |
지난 2월 18일(수) 대전 유성구 갑동에 있는 국립대전현충원을 찾은 20개 시민단체 회원과 개인자격 주권자 등 33인이 “우리 모든 국민이 후손 없는 무후(無後) 독립투사 제주(祭主)”라고 선언하면서 홍범도 장군과 후손 없는 광복군 17위 선열께 각각 설 차례를 드리는 추모계승행사를 개최했다.
정오부터 시작된 이 행사 1부는 독립유공자 제3묘역에 안장된 독립영웅 홍범도 장군을 참배하는 것이었고, 독립유공자 제7묘역에 안장된 무후광복군 17위를 참배하는 2부 행사는 낮 1시부터 시작되었다. 1부와 2부 진행사회는 각각 김동섭 독립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과 김선홍 대한민국순국선열숭모회 상임공동대표가 맡았다.
하이라이트는 한대수 아시아1인극협회 대표가 공연한 독립군 진혼(鎭魂)굿 특별헌정 퍼포먼스였다. 1부에서는 대형태극기를 휘두르며 약 3분 동안, 2부에서는 활짝 핀 붉은 장미꽃 20송이에 달린 꽃잎을 뜯어내어 땅바닥에 떨어뜨리거나 가슴에 세게 때려 흩날리게 하면서 약 10분 펼쳐졌다.
특별헌정공연에 혼연일체로 빠져들었던 참배객들은 거의 대부분 “눈물이 나올 정도로 감동적이었다.”면서 이구동성으로 “새삼스럽게 무후항일투쟁 선열님들에 대한 추모와 유지(宥旨) 계승 의지를 굳게 다졌다.”는 소감을 밝혔다.
공연자 한대수 대표는 1986년 거창사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인권활동에 적극 참여하기 시작한데 이어 2002년 한국전쟁전후민간인학살진상규명범국민위원회가 출범하자 운영위원 자격으로 전국 학살현장을 찾아다니며 1인극 진혼굿 퍼포먼스를 해온 예술가로서 “역사와 시대에 바칠 것은 없고, 잘 하지도 못하지만 마음이 우러나와 맨 몸으로 바치는 공연”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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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26년 2월 18일(수) 대전현충원 무후광복군묘지에서 한대수 아시아1인극협회 대표가 독립군 진혼(鎭魂)굿 특별헌정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제공 우문명TV) |
이 행사는 개헌개혁행동마당(상임의장 송운학)이 기획하여 준비했고, 이 단체에 가입·소속되어 있거나 사안별로 연대협력 또는 후원 관계를 맺고 있는 개혁연대민생행동, 고백고통일문제연구소, 공익감시 민권회의, 국민연대, 국민주권개헌행동, 글로벌 에코넷, 나누고 베풀고 봉사하는 그룹, 삼청교육대 아동인권 진상규명위원회, 선감학원 아동인권 진상규명추진회, 우문명TV, 의민특검대, 촛불계승연대천만행동, 춘천중도유적보존협의회 준비위, 친일청산 한국사복원운동, 투기자본감시센터, 행·의정 감시네트워크 중앙회 등 총 20개 시민사회단체가 동참했다.
그 뒤에 열린 시국간담회 주제는 내란 없는 국가건설, 주민자치지방분권, 국민주권보장개헌, 남북교류·상생평화, 국익중심실용외교 등이었다.
사회를 맡은 송운학 상임의장은 “독립유공자 1만 8천 20명 중 약 40.4%에 해당하는 7,285명이 후손 또는 가족을 찾지 못해 아직까지도 증서를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이북이 고향인 항일투사가 가장 많고, 해외거주 교포 가운데는 중국교표가 가장 많다. 미지급된 보상금도 8조 5천억 원에 달한다.”면서 말문을 열었다.
이어서 송운학 상임의장은 “이처럼 많은 무후항일선열 가운데 우리가 특별히 홍범도 장군과 광복군 17위 묘지를 찾아 설날 차례를 올리고 참배하는 이유는 이들 선열께서 항일무장투쟁에 투신했고, 이 과정에서 후손을 남기지 못했다는 무후(無後)라는 공통점 이외에도 평생 화이부동 정신을 솔선수범했다는 3대 공통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송운학 상임의장은 “국가보훈부가 최근 광복군을 법적으로 정규군으로 지정했지만, 원래 이 조직은 1940년 9월 17일 중화민국 충칭에서 조직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준군사조직이었고 독자적인 작전권도 없었다. 게다가, 조선의용대 다수파가 연안으로 이동해 조선의용군을 결성했지만, 의용대 전신인 조선의열단을 창설하고 초창기부터 이끌어왔던 약산 김원봉 선생이 1942년 7월 조선의용대 소수파와 함께 광복군에 합류함으로써 1944년 8월 임정은 군통수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명실상부한 좌우합작 조직으로 발전했다. 그러므로 화이부동·존이구동 정신은 실사구시·중도실용 정신과 함께 국론을 통합하고 남북신뢰, 상생교류, 세계평화 등 도산 선생이 꿈꾸던 대공주의(大公主義)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역설했다.
성명을 밝힌 참석자는 감정은, 고제열, 구윤회, 김동섭, 김선홍, 김수현, 김종대, 김희모, 박기섭, 박종성, 박철연, 송운학, 안병권, 안은찬, 오영세, 우문명, 윤영대, 이남하, 이근철, 이두원, 이전오, 이정일, 임양길, 전경배, 전재홍, 정마리아, 정차임, 차미산, 표옥란, 한대수, 한옥순, 현낙훈, 홍석규 등 33인이었다. 이들은 “선열들께서 못 다 이룬 꿈을 이어받아 널리 알리면서 기필코 그 높으신 뜻을 실천하고 달성하자!”고 다짐했다.
조명호 기자 cambroadcast@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