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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주환 (전)한국사회복지관협회장 |
좋은 벗을 만나는 것은 큰 복이다. 그것도 은퇴한 이후에 마음이 통하는 벗을 만나는 건 쉽게 누릴 수 없는 복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마음을 주고받은 벗이 없었던 것은 물론 아니다. 검정고시로 대학을 진학했기 때문에 대학시절의 벗이 우선 생각난다. 험난한 시절이어서 각별한 정을 나눈 벗들이었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대전의 신학대학에 편입하면서 대전으로 거처를 옮겼다. 통화를 나누고 간혹 만나기는 했지만 예전 같은 정을 나누기는 어려워졌다. 신학대학에서도 설레는 생각을 나눈 벗들이 있었다. 그러나 각자의 삶의 자리가 달라지면서 우정의 끈만 간신히 붙잡고 있는 정도다. 그런데 선물 같은 친구들을 새로 만났다.
한 사람은 나보다 나이가 많다. 오래 전부터 모임을 함께 했지만 딱히 벗이라고 칭하기는 다소 어려웠다. 은퇴한 이후, 모임의 성격에 관한 일 때문에 따로 만날 일이 있었다. 그 만남이 계기가 되었다. 주고받은 이야기들의 깊이와 재미 때문에 시간이 어떻게 지난 줄도 모를 정도였다. 이후로 만남의 횟수가 늘었다. 다른 기회에 만난 두 사람은 서점이 매개가 되었다. 한 사람은 성경에 대한 독특한 이해와 동서양의 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또 한 사람은 역사와 인공지능에 대한 통찰이 탁월하다. 이들과는 우리나라와 중국의 고전을 읽으면서 지혜의 새로운 차원을 만나고 있다. 만날 때마다 배움이 있어서 고마울 따름이다.
은퇴한 이후에 좋은 벗을 만나는 것은 삶을 윤택하게 한다. 은퇴하면 모든 것이 빠져나간다. 돈도 체력도 관계들도 작아지고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런 와중에 마음이 통하는 벗을 만나니 새로운 즐거움이 찾아왔다. 제일 먼저, 함께 하고 싶은 일이 생겨났다. 그것이 여행이든 공부든 간에 함께 모색하고 계획하고 실천에 옮긴다. 나이가 들고 만난 벗이기에 이런저런 논쟁이 필요 없다. 저절로 합의에 이르고, 쉽게 의기투합이 가능하다. 이쪽이 주장하면 다른 쪽이 양보하고, 다음에는 양보한 쪽의 의견이 최우선이다. 지금까지 여러 해를 그렇게 지냈으나 마음이 불편한 일은 없었다. 가끔 아슬아슬한 순간도 있었지만 늘 웃으면서 마무리했다.
사람이 한 생을 살아가면서 필요한 게 많다. 자본주의 사회라 돈이 필요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돈이 없으면 불편한 것이 현실이다. 폭 넓은 인간관계도 필요하다. 관계가 자산인 시대라서 다양한 인간관계는 삶의 질을 규정하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나 목표도 중요하다. 그것이 없으면 삶이 터덕거리고 둔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사람이다. 은퇴한 이후에는 더욱 사람의 중요함을 절감하고 있다.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다. 마음을 나누고, 함께 할 일이 있는 벗의 중요함을 좋은 벗을 만나면서 깨달아서다. 좋은 벗을 만나니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근래에 내가 받은 가장 큰 복이다.
이영재 기자 sd534@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