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과도한 반성보다 할 일을 찾아라

기사승인 2026.06.08  10:55:40

공유
default_news_ad1
최주환 (전)한국사회복지관협회장

선거가 끝나고 나니 여기저기서 반성의 소리가 나온다. 반성은 개인이나 조직을 성장시키는 동력이다. 잘못이나 실수를 돌아보고 더 나은 방향을 찾는 과정은 개인이나 조직을 건강하게 만든다. 그러나 반성에도 적정한 수준이 있다. 과도한 반성은 성장이 아니라 퇴행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지난 일들에 집착하다보면 지금 이 순간에 누려야 할 기쁨이나 마땅히 찾아야 할 과제를 놓쳐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일은 이미 굳어진 과거다. 되돌릴 수 없는 일에 붙잡혀서 지금의 성과를 놓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반성이 지나치면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로 이어진다. 조직도 다르지 않다. 반성이 지나치면 조직자체가 동력을 잃거나 분열로 치닫는다.

지방자치단체장에 당선된 한 사람의 반성문과 여권의 중진 국회의원이 선거과정을 반성한 글을 읽었다. 지역주민 밀착형 정책개발에 미숙했다는 것과, 대통령에게 기댄 것 외에는 한 일이 없었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자기 당의 대표에 대한 비난도 양념처럼 발라서 반성한다고 했다. 그리고는 자학적으로 이번 선거는 패배한 선거라고 규정했다. 16개 광역선거구 중에서 12개 선거구를 싹쓸이하고도 패배했다는 자책을 어찌 보아야 할까. 반성이라기보다는 희생양을 찾으려는 발톱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아쉬운 결과라면 모를까, 자책에다가 남 탓까지 슬그머니 이어붙인 모양새는 선거결과에 대한 바른 분석이라고 보기 어렵다.

논어의 학이(學而)편에는 우리가 잘 아는 일일삼성(一日三省)이라는 사자성어가 나온다. 하루에 세 번을 반성한다는 의미인데, 개인의 도덕적 수양과 자기성찰의 지침이다. 다른 사람에게 신의를 지켰는지, 친구에게 의리를 다했는지, 배운 바를 익혀서 실천했는지를 돌아본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 반성이나 성찰이 모든 일에 정합한 것은 아니다. 성찰의 과정이나 횟수가 지나치면 개인이건 조직이건 상처만 남는다. 가슴을 치거나 땅을 치기보다는 오늘의 성과에 감사하고 내일을 기약하는 준칙을 찾아내는 것이 바른 반성이다. 우리의 노력이 물거품이었다는 자책은 아무 짝에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강점은 키우고 약점은 보완하는 성찰이 되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균형’이다. 한쪽으로 기울어지면 극단으로 내달리게 된다. 회복도 어렵다. 반성의 궁극은 ‘바름의 회복’이다. 이 방향이 틀어지면 개인적으로는 삶의 안정성이 훼손되고, 조직적으로는 다툼과 분열의 길로 갈 수밖에 없다. 반성은 바름의 회복에 탄력을 더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반성의 중간쯤에서 남을 탓하는 쪽으로 기울고, 남을 탓하다가 결국은 자신마저 허물어뜨리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된다. 지난 일을 되돌아보는 것은 아주 소중한 성장의 계기가 된다. 반성이 없는 개인이나 조직은 망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과도한 반성은 더 나은 차원을 만나게 하기보다는 불행의 수렁으로 인도할 뿐이다. 민주당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이영재 기자 sd534@naver.com

<저작권자 © CAM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