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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한 편보다 오래 남아야 할 것 — 언론인의 펜 |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논란을 지켜보면서, 언론인으로서 그리고 오랫동안 글을 써온 사람으로서 마음 한편이 무겁다.
영화 한 편을 두고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석이 다를 수 있다. 영화적 상상력의 범위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를 놓고 논쟁할 수도 있다. 그것이 민주사회다.
그러나 지금 벌어지는 소란을 보면서 나는 조금 다른 질문을 던지고 싶다.
우리는 왜 이 영화가 비추고 있는 또 하나의 역사를 제대로 바라보지 않는가.
그 시대에는 권력 앞에서도 펜을 놓지 않으려 했던 언론인들이 있었다.
권력이 윤전기를 멈추게 할 수는 있었다. 기사를 삭제하고 검열할 수도 있었다. 광고란을 백지로 만들 수도 있었다. 기자를 거리로 내몰고 펜을 빼앗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끝내 빼앗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다.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언론인의 양심이었다.
송건호 선생을 비롯한 당시 언론인들이 지키려 했던 것은 자신들의 직장도, 밥그릇도 아니었다. 그들이 지키려 했던 것은 국민이 진실을 알 권리였고, 권력을 감시해야 한다는 언론의 사명이었으며, 결국 민주주의의 숨결이었다.
나는 그것이 이 영화를 둘러싼 논쟁 속에서 결코 놓쳐서는 안 될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언론의 자유는 어느 날 저절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누군가는 해직을 감수했고, 누군가는 고문과 감옥을 견뎠으며, 누군가는 가족의 생계까지 걸어야 했다. 그렇게 지켜낸 한 줄의 기사와 한 장의 신문이 오늘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언론 자유의 밑바닥에 놓여 있다.
그래서 영화 한 편을 둘러싼 소란보다 우리가 더 오래 기억해야 할 것은 권력 앞에서도 펜을 놓지 않았던 언론인들의 용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반세기가 지난 오늘, 그 질문은 고스란히 우리에게 돌아온다.
“지금 우리의 언론은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가.”
권력인가. 자본인가. 진영인가. 조회수인가.
아니면 여전히 진실인가.
언론은 권력과 가까워질수록 국민과 멀어질 수 있다. 진영의 확성기가 되는 순간 스스로 존재 이유를 잃을 수도 있다. 언론인의 펜이 무서운 이유는 힘이 있어서가 아니라, 힘 있는 자에게도 질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언론인이고 글쟁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둘러싼 논란을 보면서 영화보다 오히려 나 자신에게 묻게 된다.
나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나는 누구를 향해 질문하고 있는가.
그리고 내 펜은 권력이 아니라 진실을 향하고 있는가.
좋은 언론은 정권이 바뀐다고 질문의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 내가 지지하는 권력에도 질문하고, 내가 반대하는 권력에도 사실로 말해야 한다. 그것이 언론인의 숙명이고 펜을 든 사람이 감당해야 할 최소한의 양심이라고 믿는다.
영화 《암살자(들)》을 좋아할 수도 있고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영화 한 편을 둘러싼 논쟁 때문에 그 시대 언론인들이 피와 눈물로 남긴 질문까지 묻혀서는 안 된다.
윤전기는 멈출 수 있어도 진실은 멈출 수 없다.
신문의 지면은 백지로 만들 수 있어도 언론인의 양심까지 백지로 만들 수는 없다.
반세기가 흐른 지금도 그 질문은 살아 있다.
“당신의 펜은 지금 누구를 향하고 있는가.”
나는 오늘, 언론인으로서 그 질문 앞에 다시 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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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자유를지켜라
#내펜은어디를향하는가
김문교 시사칼럼니스트 cambroadcast@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