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법아세’라는 성어는 없다. 세상 돌아가는 형편이 하도 괴이해서 만든 말이다. 중국 한나라 때, ‘원고생’이라는 노학자가 공손홍이라는 후배에게 ‘세상에 영합하기 위해서 학문을 굽히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권고했다. 다른 말도 있지만, 이 부분만 떼어내면 곡학아세(曲學阿世)가 된다.
최주환 (전)한국사회복지관협회장 |
곡학아세는 어용학자들의 행태를 꾸짖는 말로 사용된다. 이 말을 곡법아세로 바꿔서 사용하는 이유는 ‘법을 굽혀서 특정인에게 아부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법을 다루는 검사들은 대단한 ‘공부 선수’들이다. 그들이 머리를 싸매고 공부해서 얻은 직무의 뒤끝이 지리멸렬이라니 답답하다.
대통령의 배우자가 어느 목사에게 명품을 받았다는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에 대한 검찰의 최종판단이 ‘무혐의’다. 검찰은 전담수사팀을 꾸린지 4개월 만에 ‘대통령 배우자가 명품가방을 받은 일이 대통령의 직무와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4만5천 원짜리 떡 한 상자를 돌려줬는데도 청탁금지법 위반으로 과태료를 부과 받은 경찰공무원이 있는 나라에서 100배가 넘는 금액의 물건을 받은 사람에게 어떤 범죄도 성립하지 않는다고 했다. 너무나 황당한 판단이다 보니, 조중동으로 통칭되는 보수언론마저 한 목소리로 일반상식과 다른 판단이라고 비판했다. 한 원로 법조인은 ‘검찰의 치욕’이라고도 했다.
검찰의 고민도 깊었을 것이다. 대통령 배우자의 문제를 다루다보니 극도로 몸을 사릴 수밖에 없었을 것임도 이해할 수 있다. 대통령이 인사권을 발동해서 수사지휘자를 교체한 마당에 그 의중을 모를 리 없는 검사들이 야당 대표의 배우자를 다루듯이 막대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친절하게 방문조사까지 한 걸 보면 어느 정도 예상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검찰의 결론을 수용할 국민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오죽했으면 조선일보마저 받은 것 자체가 부적절한 일이었으니 대통령의 배우자가 초기에 사과했어야 한다고 했을까. 국민의 법감정과 동떨어진 이 판단은 두고두고 문제가 될 것이다.
법률의 운용과 관련된 건물에는 ‘정의의 여신 상’이 있다. 한 손에는 칼을 들고 다른 손에는 저울을 들고 눈을 가린 모양이다. 법 운용의 공정성과 형평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형상이다. 특히 눈을 가린 이유는 감정에 흔들리지 않으려는 의미가 담겼다. 법이 사람에 따라 얼굴을 달리하면 사람들 사이의 믿음이 깨진다.
‘모자는 머리에 써야 하고, 신발은 발에 신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고 물건에는 각각의 쓸모가 있다는 뜻이다. 법도 그 쓸모에서 벗어나면 웃음꺼리로 전락할 뿐이다. 신발을 머리에 쓰고 모자라고 우기는 검찰의 발표를 보았다. 무슨 영화를 얻으려는 것인지, 개탄할 따름이다.
손정임 기자 sjo544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