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색을 밝히는 초나라 회왕에게 정수라는 요망한 애첩이 있었다. 그런데 이웃나라인 위나라 왕이 천하절색의 여인을 보내자 그 여인을 가까이했다. 정수는 질투심이 끓어올라 위나라에서 온 여인을 쫓아낼 궁리에 몰두했다. 그리고는 계책을 생각해냈다. ‘왕께서 자네를 좋아하지만 코는 좋아하지 않는 것 같으니, 왕을 만날 때는 코를 가리면 더욱 사랑하실 거야’라고 거짓조언을 했다. 여인은 이 거짓말을 참말로 믿고 왕을 만날 때마다 코를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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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주환 (전)한국사회복지관협회장 |
이상하게 여긴 회왕이 정수에게 물었다. 그러자 사특한 정수가 ’저 여인은 폐하의 냄새를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회왕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그 여인에게 사연을 묻지도 않고 여인의 코를 잘라버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거짓말의 불행한 기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하겠다.
거짓말을 연구한 미국의 도덕철학자인 ‘시셀라 보크’는 거짓말의 다양한 양태를 거론했다. 권력형 거짓말, 온정적 거짓말, 계획적 거짓말, 직업적 거짓말 등이 그것이다. 보크는 유형별로 간단한 설명을 덧붙였다. 권력형 거짓말은 권력자들의 거짓말, 온정적 거짓말은 위로하기 위한 거짓말, 계획적 거짓말은 사실을 왜곡하는 거짓말, 직업적 거짓말은 선의(善意)를 담은 거짓말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거짓말은 쉽게 이해할 수 있으므로 직업적 거짓말에 대해서만 보충적으로 설명하면, 말기 암 환자를 위로하는 의사의 거짓말이나 학생들을 격려하기 위한 선생님의 거짓말 등을 말한다. 그런데 보크가 주목한 거짓말은 권력형 거짓말과 계획적 거짓말이다. 다른 사람을 지배하려는 악랄함이 내재된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법꾸라지들의 거짓말이다.
법꾸라지들은 거짓말을 사실인 것처럼 둔갑시키는 능력이 탁월하다. 마치 국민의 이익이라도 되는 것처럼 둘러댄다. 이들의 거짓말을 언론들이 그대로 받아쓰기 때문에 국민들이 자주 속는다. 이들은 또 국민들의 정서를 자극하는 이야기꺼리들을 주기적으로 조작해낸다. 특정한 상황이나 사건을 짜깁기해서 국민들의 판단력을 흔들어 놓는다. 예컨대, 특정인에게 윤리적인 낙인을 찍은 후에 반론을 제기하면 무작정 거짓말쟁이라고 공박한다. 자기네들이 거짓말을 하면서 상대방을 거짓말쟁이라고 프레임을 씌워버린다.
또 악의적인 의도로 미끼를 던져 놓고는 그 미끼에 스치기만 해도 온갖 언어폭력을 동원해서 비인간적인 공격을 퍼붓는다. 하지만, 개가 짖는다고 해서 담장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국민들도 그들의 수법을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공자는 ‘교묘한 말이나 알랑거리는 얼굴에는 인(仁)이 드물다’고 했다. 그런데도 세상을 보면 교묘한 말로 다른 사람을 홀리거나 알랑거리는 얼굴로 자신을 드러내려는 사람들이 많다. 배경에는 두말할 것 없이 거짓말들이 똬리를 틀고 있다. 거짓말의 칼날은 결국 자신의 심장을 향하게 되어 있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거짓말을 늘어놓고는 ‘정치적 풍자였다’는 무뢰한도 있다.
거짓말을 방치하는 공간은 쉽게 개판이 된다. 훨씬 큰 거짓말이 횡행하게 된다. 요즘 나라를 망가뜨린 거짓말쟁이들이 버젓이 활개 치는 장면들이 증명하고 있다. 더운 날씨에 더 열 받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통합도 좋고 협치도 좋지만, 거짓말로 나라를 좀먹은 무리들을 척결하는 일은 신속하고 단호해야 한다. 우물쭈물거리다가 ‘도둑에게 문 열어주는 꼴’이 될까봐 걱정이 되어서다.
손정임 기자 sjo544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