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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주환 (전)한국사회복지관협회장 |
중국의 사자성어(四字成語)에는 기막힌 뜻과 지혜가 담겨 있다. 각주구검(刻舟求劍)이라는 말도 그 중 하나다. 춘추전국시대 초나라의 한 사람이 배를 타고 강물을 건너는 와중에 귀중하게 여기던 칼을 만지작거리다가 그만 강물에 빠뜨렸다. 당황한 이 사람은 바로 강물에 뛰어들지 못하고, 칼을 놓친 배의 가장자리에 큼지막한 표시를 해두었다. 칼을 놓친 자리를 잊지 않으려는 심산이었다. 배가 건너편 나루에 도착하자 칼을 찾겠다고 자기가 표시해 두었던 자리 밑으로 뛰어들었다. 배가 칼을 놓친 자리를 한참이나 지나왔기 때문에 칼이 그 자리에 있을 리는 만무했다. 시간과 장소가 바뀌었음을 인지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빗댄 우화다.
오래 전에 ‘나중에는 없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나중에 하겠다고 미루었다가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건이 발생한 시점에 처리해야 할 일은 그때 하는 것이 옳다. 복잡하고 어렵다고 해서 미루어두었다가는 오히려 문제가 커지고 상황이 훨씬 복잡하게 꼬이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지금 해야 할 일을 미루는 것은 결국 그 일을 완성하지 못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지금 해야 할 일은 ‘닥치고’ 지금 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해 주길 기다린다든지,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리면 문제나 상황은 오리무중이 되어 손쓰기 어려운 지경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도 각주구검의 어리석음은 우리 삶의 여러 장면에서 흔하게 목격된다.
일을 미루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그럴싸한 말이 있다. ‘질서 있는 추진’이라는 말이다. 일종의 상황론이다. 여러 형편을 감안해서 단계를 정하고, 절차를 확인하면서 일을 추진하는 것이 옳다는 말이다.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실은 핑계를 염두에 둔 말이고 문제해결의 의사가 없음을 우회적으로 나타내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단계나 과정의 준수는 실수를 줄일 수 있고 상황을 분석하는 것은 패착을 방지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과정이 필요하지 않은 일까지도 단계나 과정을 운운하는 것은 온당한 의견이라고 할 수 없다. 칼을 놓쳤으면, 배 가장자리에 표식을 남기는 시간에 바로 옷을 벗어젖히고 강물에 뛰어들어서 칼을 찾는 것이 바른 순서다.
물론 핑계 대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강물이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깊을지 모른다’거나 ‘입은 옷이 고가의 옷이어서 당장 강물에 뛰어들기 어려운 상황이었을지 모른다’고 둘러대려 할 것이다. 아니 오늘의 우리 주변에도 이런 논리를 신주단지처럼 들고 나올 위인들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지금 처리해야 할 과제를 미루는 것은 그 과제가 영구미제의 영역으로 달아나버린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무슨 표식을 해 두었더라도 그것은 시간과 공간이 달라져버린 뒤라서 아무 쓸모가 없을 뿐이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인데도, 상황이 무르익기를 기다려보자는 말은 ‘현실 안주론자’들이 내세우는 헛구호다. 기다리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조명호 기자 cambroadcast@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