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 모본왕(慕本王)이 등장한다. 그가 즉위한 이듬해에 폭풍이 불어 나무가 뽑히고, 서리와 우박이 여름에 내리는 자연재해가 발생했다. 그러자 나라 곳간을 열어 굶주린 백성에게 곡식을 나눠주었다. 거기까지만 좋았다. 즉위한 지 4년이 되자 포학해지기 시작했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내용을 옮기면, ‘항상 사람을 깔고 앉거나 누울 때도 사람을 베고 누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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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주환 (전)한국사회복지관협회장 |
엽기적 만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아래 깔린 사람이나 베개 역할을 하던 사람이 움직이면 용서 없이 죽이고, 왕의 잘못을 지적하는 신하가 있으면 활을 당겨 죽였다’고 했다. 이런 사람이 오래 갈 리는 없다. 어떤 이가 ‘나를 어루만지면 왕이요, 나를 학대하면 원수일 뿐이다’고 말하는 걸 듣게 된 두로(杜魯)라는 신하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왕이 된 지 6년만의 일이다.
모본왕은 왜 그런 몹쓸 짓을 자행한 것일까. 아무리 옛날이었다고 하더라도 모본왕의 행위는 해괴하기 이를 데 없고, 금수만도 못한 짓이다. 배경설명은 없다. 삼국사기에는 교훈이 될 만한 이야기도 많고 때로는 난삽한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사람을 깔아뭉개고 살인까지 일삼은 이야기를 흔하게 찾아볼 수는 없다. 모본왕의 넋 빠진 기행은 ‘반사회적 인격장애’라고 할 수 있다.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진 사람은 특징적 행동양식을 보인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무시하고 각종의 규범을 가볍게 여긴다. 충동적이고 공격적이며 책임감과 죄책감이 없다. 그런데 요즘 들어 모본왕과 비스무리한 사람을 자주 본다. 모본왕과 행동이 똑같은 건 아니지만, 무책임한 면을 집중해서 살펴하면 모본왕보다도 훨씬 고약해 보인다. 재판정을 오가면서 희죽거리는 인간 말이다.
이 특이한 인물이 대통령이었을 시절에 교육부 장관이었던 사람이 지난 국무회의 때, 이재명 대통령의 리더십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국무회의가 진행되는 내내 자기 말만 늘어놓던 사람만 보았던 터라, 경청과 존중으로 일관하는 이재명 대통령을 보고 ‘진정으로 소통하려는 자세에 놀랐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지난정부 사람들의 말까지 주의 깊게 들으려는 모습을 보고, 다른 차원의 대통령을 보았기 때문에 그리 말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실제로 윤석렬은 1시간 동안의 국무회의에서 59분 동안 오로지 자신의 말만 늘어놓았다고 한다. 물론 그중에는 쓸 만한 말도 있었겠으나 그렇지 않는 말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러니 이런 말이 웃음꺼리로 시중에 회자되는 것이다. 나도는 이야기에 의하면, 검사시절에는 정도가 훨씬 심했다고 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하고 살면 오래 살지 못한다. 금세 몸이 축나기 때문이다. 자기 말만 옳다고 우기는 사람의 언어도 허공을 떠도는 먼지가 되어 쉽게 흩어져 버린다. 금세 천박함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망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의 삶도 비천하기는 마찬가지다. 삶의 태도나 말이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면 안 된다. 다른 사람의 삶을 부정하는 사람은 불행과 만날 시간이 앞당겨진다.
또 우리가 앞에서 본 몇 가지 사례는 ‘자신의 미래는 자신이 결정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확증하고 있다.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다른 사람과 보폭을 맞춰야 한다. 그러면 현재의 평안과 미래의 안정을 동시에 담보하게 된다. 역사가 증명하는 일이고, 몇몇의 장면들이 확인하는 바다. 건방 떨지 말자. 건방을 떨면 그 건방 때문에 치명상을 입는다.
손정임 기자 sjo544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