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하기 전까지 몇몇 단체의 대표 노릇을 했다. 능력을 넘어서는 일들이었다. 그런데도 나름의 성과를 내면서 임기를 마칠 수 있었다. 그때 깨달은 것이 많다. 그걸 다 얄거하기는 어렵지만, 다양한 유형의 사람을 만난 것은 큰 경험이었다. 사람들을 유형화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하지만 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특이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배운 것은 많다.
![]() |
최주환 (전)한국사회복지관협회장 |
먼저 거론하고 싶은 유형은 ‘흔드는 사람’이다. 이 사람들은 매사 입장이 없다. 찬성하는 것도 아니고,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애매한 자리에 있다가 저울추가 기우는 쪽으로 달려가는 유형이다. 그렇다고 관망만 하는 것도 아니다. 시도 때도 없이 자신의 애매한 입장을 적극적으로 개진하면서 발목을 잡는다. 하자는 것도 아니고 하지말자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저래서 어렵고, 저것은 이래서 어렵다는 식이다. 그러니 일을 추진하는 쪽에서 보면 미치고 환장할 노릇인 경우가 많다, 아예 딱 부러지게 자신의 의견을 내면 좋은데, 마치 포용적인 사고를 가진 것처럼 행세하면서 지도부와 담당자를 끊임없이 흔들어댄다.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유형이 아닐 수 없다. 간혹 이런 사람도 필요한 경우가 있겠으나 일을 만드는 사람에게는 거머리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다.
두 번째는 ‘허무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특정 사안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무작정 일을 망가뜨리려고 설치는 사람이다. 대안을 내는 것도 아니다. 이들은 회의석상에서 우선 목소리가 크다. 제스처도 요란하다. 논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온갖 사설을 늘어놓으면서 일 자체를 허물어버리려고 나댄다. 눈 여겨 볼 대목은, 어느 곳에서든 일을 하무는 사람의 특징이 거의 같다는 점이다. 이들은 특정인을 싫어한다. 그가 만들고자 하는 일도 싫어한다. 그래서 개소리에 지나지 않는 의견을 희귀하게 포장해낸다. 그리고는 자신의 이야기를 퍼트리려고 동분서주에 고군분투를 마다하지 않는다. 가슴을 칠 일은, 그런 소리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이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일을 허무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자신을 허물고 있음을 알지 못한다.
세 번째는 ‘세우는 사람’이다. 아직까지는 세우는 사람이 많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우는 사람은 일이 되는 쪽으로 힘을 모으는 사람이고, 일의 성사를 위해서 나름의 역할에 충실한 사람이다. 일을 세우는 사람은 무작정 찬성만 하는 것이 아니다. 좋다고 칭찬만을 꾸며내지도 않는다. 일을 세우는 사람은 명분과 동기를 꼼꼼하게 살펴본다. 아무리 거창한 일이라도 명분에 어긋나는 일이거나 불순한 동기에서 비롯된 일이면 단호하게 반대한다. 물론 반대의견의 개진도 세련된 방법을 선택한다. 다양한 경로를 활용해서 부당성을 지적하고 올바르게 지향해야 할 대안도 제시한다. 대안의 근거가 되는 사례와 성공적인 선례까지도 적시한다. 이런 사람을 보면 없던 힘도 새로 생겨난다. 다행히 이런 분들과 오랫동안 함께 일했다. 참으로 행복한 경험이었다.
사람을 특정한 잣대로 유형화하는 건 잘못된 일이다. 사람의 입장은 언제나 달라질 수 있고, 형편에 따라 역할도 달라질 수 있다. 그래도 지나온 날들을 되짚어보면, 소모적인 역할에 정력을 낭비하는 사람을 적지 않게 보았다. 일을 바르게 세우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소망한다.
손정임 기자 sjo5448@naver.com